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朝鮮時代墳墓群)☞ 양반분묘에서 서민 민묘까지 다양한 계층의 무덤 1,000기 이상과 상석, 문인석, 비석, 동자상 등 수백여 기의 석물들이 있는 곳이다. 15세기 이래 서민, 중인, 내관, 상궁, 사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각종 문관석과 동자상 등이 시기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내관의 분묘가 많은데 그 중에는 17세기 내관이었던 승극철 부부의 묘와 비석이 있어 내관의 생활사 연구에 자료가 된다. 조선시대 여러 계층의 분묘가 집중적으로 섞여있는 곳은 흔치 않은 예로 초안산조선시대분묘군은 특정계층의 분묘를 비롯해 사대부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동안 무덤을 조영하여 묘제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또한 남아 있는 문인석, 동자상 등 석물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석물 변천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비석골 공원
뱀딸기라고 불리던 이빨간 열매의 달달한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분묘군(朝鮮時代墳墓群)
"이곳 초안산은 내시들을 비롯해 양반과 서민들의 분묘 1000여 기가 자리잡고있는데 대부분 내시들의 묘여서 "내시 산"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시들의 묘들은 대부분 궁궐이 있는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죽어서도 궁궐을 바라보며 왕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까지만 하더라도 매년 가을에 마을사람들이 내시들을 위해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특히 이곳 초안산은 내시들의 묘를 비롯해 양반과 서민들의 분묘까지 다양한 계층의 분묘와 수백여 기의 석물들이 시기별로 분포해 조선시대의 공동 묘지였음이 밝혀지고 있어 조선시대 묘제와 석조각 변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되고 있으며 2002년 3월 9일에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楚安山朝鮮時代墳墓群)'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440호로 지정되었다. 지금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은 등산객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고있다.
초안산 분묘지는 사실 발견되고 문화재로 지정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99년 6월 7일 9시 뉴스에서 노원구 월계동 초안산에 천여기가 넘는 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훼손되고 있다는 취재보도가 나왔고, 그 즉시 서울시는 즉시 전문가의 예비조사를 거쳐 2000년 4월부터 본격적인 정밀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2002년 3월에 초안산의 집단묘역은 사적 440호로 지정되었다. 실제로 초안산을 오른 결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복원은 물론 제대로 보존조차 되지 못한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초안산은 주민들이 가볍게 운동을 하기 위해 오르내리는 산이었는데, 길 바로 옆에 봉분이 솟아있거나 무덤 앞에 세우는 문인석은 머리가 잘려나가거나 묘비가 누워있거나 묘비문에는 묘가 많이 모인 곳에 소나무숲이 들어서 있는 등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어있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묘비문이 비교적 제대로 남아 있어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산딸기 빨갛게 익어가는 초안산 둘레길을 걸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훼손되 있는 내시 분묘지를 보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보충이 심각한 산딸기가 시들시들 채 여물지도 못한채 익어가고 있네.
암을 앓고있는 소나무
'▣ 서울특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내리는 서울숲의 아침 (0) | 2015.08.02 |
---|---|
서울의 명동성당 (0) | 2015.07.26 |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불타는 연산홍 (0) | 2015.04.27 |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獨立門) (0) | 2015.04.22 |
북악스카이웨이 둘레길 걷기 (0) | 201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