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번호; 사적 330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동 및 청파동2가, 마포구 신공덕동 및 공덕동 •지정일; 1989년 6월 8일 •시대; 조선 말기~일제 강점기 •분류; 독립 유적지 •내용; 서울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이곳은 본래 정조(正祖)의 큰아들로 5세에 죽은 문효 세자(文孝世子)의 무덤인 효창원(孝昌園)이 있던 자리이다. 그 후 경내에 문효 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宜嬪成氏), 순조(純祖)의 후궁인 숙의 박씨(淑儀朴氏), 숙의 박씨의 소생 영온 옹주(永溫翁主)가 안장되었다. 일제가 1924년 6월에 효창원의 일부를 효창공원으로 개발하고, 패망 직전인 1945년 3월에는 문효 세자 이하의 무덤을 모두 서삼릉(사적 198호) 경내로 옮김에 따라 효창원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광복과 더불어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인 백범(白凡) 김구(金九; 1876~1949) 선생이 조국 광복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이봉창(李奉昌; 1900~1932), 윤봉길(尹奉吉; 1908~1932), 백정기(白貞基; 1896~1934) 의사의 유해와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가묘를 1946년 7월 효창공원의 중심지에 국민장으로 안장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하였다. 이어 1948년 9월에는 중국 땅에서 순국한 임시 정부 의장과 주석을 지낸 이동녕(李東寧; 1869~1940)과 국무원 비서장을 지낸 차이석(車利錫; 1881~1945)의 유해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귀국 후 서거한 조성환(曺成煥; 1875~1948)을 공원 동남쪽 언덕에 안장하였다. 1949년 6월에는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자 국민장으로 공원 서북쪽 언덕에 모시어 부근 일대가 선열 묘역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제2회 아시아 축구 대회 유치를 구실로 효창운동장이 1960년에 묘소 바로 앞에 개설되면서 약 15만 그루의 나무와 숲 속의 연못․섬 등이 헐렸다. 이 같은 경로를 거쳐 1972년 서울특별시에서 효창공원 조경 사업을 10개년 계획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일반인의 공원 출입을 금지하였다. 1977년 7월에는 건설부에서 ‘효창공원’으로 고시하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 효창공원 순국 선열 추모 위원회 주관으로 7위 선열 합동 추모제가 거행된 이후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 1988년 12월부터는 효창 공원 정비 공사가 정부 주도 하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의열사(義烈祠)와 창렬문(彰烈門)이 건립되고 묘역 확장과 정비가 마무리되었다. 현재 효창공원에는 선열 묘소 외 공원 관리소․어린이 놀이터․테니스장 등 편의 시설과 북한 반공 투사 위령탑․원효대사(元曉大師) 동상․대한 노인회 중앙 복지회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감상 포인트: 이동녕, 김구, 차이석, 조성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의 7위 영정을 모신 의열사와 창렬문이 있으며, 무덤 지역이 넓고 소나무 숲이 울창하며, 무덤 주위로 산책로가 있다. |
임정 요인의 묘(이동녕,조성환,차리석 선생의 묘역이다)
삼의사(三義士)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이다
백범 기념관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묘
나비의 신방 엿보기..
숲속에서 갑자기 출현한 토끼보고 천사도 놀라고 토끼도 놀라고...
참매미
도심 한복판에서 다람쥐를 볼 수 있는 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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